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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0610 톰스크 1일차, 외국인은 그저 몸 누일 곳이 필요했을 뿐이었는데..
    #Road to Russia/ㄴ불곰국 일지 2020. 10. 11. 21:31


    드디어 도착했다, 톰스크...
    살면서 모스크바, 상트빼쩨르부르크, 블라디보스톡 밖에 몰랐던 내가 여기까지 오다니..

    추적거리며 비가 오고 있는 톰스크. 역이 아기자기한 느낌이었고 러시아 특성에 걸맞게 도로면도 넓고 큼직한데 사람은 또 많지 않았다.
    숙소 체크인이 12시라서 도착한 버스 터미널에서 시간을 보내다 역에 가서 또 버텼는데 참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이때 시각 아침 7시 42분...

    밤새 15시간 동안 앉아서 오니 정말 어떻게 해서든 눕고 싶고 편하게 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예약한 숙소는 체크인이 12시...
    이대로는 죽겠다. 어떻게 가서 내가 예약한 방에 전날 지내는 사람이 없다면 일찍 체크인 안되냐고 물어보려 했더니만 영어가 통하지 않아서 직접 가는 수밖에 없었던 상황 ㅠㅠ

    이 기력 다 빠진 상황에서도 누군가가 같이 사진찍자고 해서 사진 찍혔다.... 내가 뭔 포켓몬이라도 되냐......

    여튼 도중에 버스를 잘못 타서 고생하긴 했지만 숙소 리셉션에 도착하니 대략 9시 즈음 도착했던 것 같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호스텔이었지만 옵션을 살펴보니 독채가 있어서 그 방으로 했는데 사진으로는 주방+화장실+침실까지 있는 아파트? 같은 곳이었다.

    다만 불안했던 점은, 예약할 때 그곳으로 하긴 했는데 최대 인원이 3명이라고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늘 도미토리만 예약하던 찐따는 '아니, 이거 혹시 다른 사람들 2명 포함해서 나까지 3명이 그 방에서 같이 지내게 되는 거야?' 하는 불안감에 너무나도 쫄리는 상황이었다.

    호스텔의 도미토리 다인실의 경우 오픈된 공간이지만 따로 떨어진 경우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사진 보니까 침대 큰 거 하나만 있던데 설마 낯선 사람과 같이 침대 쓰는 그런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러겠어.. 하다 결국 취소하지 않았고 체크인하러 온 그 순간까지도 걱정이 됐다.

    아무튼 리셉션에 도착해서 영어는 통하지 않으니 번역기를 이용해 말을 나눠보니
    네가 사용할 곳은 사람이 있으니 체크아웃할 때까지 기다려라. 해서 그랭 나 여기 로비에서 기다릴게. 하고 존버가 시작됐다....
    꾸벅꾸벅 졸다가 시간보다 몇 번을 되풀이했는지 모르겠는데 춥지 않고 엉덩이가 딱딱하고 차가운 곳에 얹혀 있지 않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12시가 지나도 리셉션에서 미동도 없길래 나 이제 어디로 가야 되냐고 물어보니 아직도 전 날 숙박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와 씨 사람 뒤지겠네;;; 너도 뒤져볼래? 하고 싸우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억누르고 참고 1시에 다시 물어보니 숙소 정리해야 한다고 더 기다리라고 함;;;;
    그냥 다 포기하고 나 취소시켜주고 여기 도미토리 빈 침대 아무 데나 쓰게 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다 참고 참다 보니 너무 배고파서 가방에서 먹을 것을 꺼내서 주방에서 먹다 돌아와 TV를 영혼 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현지인 둘이 나를 보며 속닥속닥 말하고 또 흘낏 흘낏 쳐다보고 한참을 그러는 것을 발견했다.
    또 시작이네.. 그래 나 러시아인 아니다 뭐 어쩌라고 슈발! 싶어서 그냥 한번 고개 들어서 나 너네가 쳐다보고 있는 거 알아.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계속 티비를 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스윽하고 다가오길래 고개를 돌려보니 그 둘이 와서 얼굴에 웃음을 띄고서는 러시아에서는 도통 듣기 힘든 영어로 웨 아유 프롬?이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유지나 까레야.라고 하니 아 자기 이름은 뭐고 얘는 뭔데(이름이 기억나지 않지만 둘 다 굉장히 흔한 이름이었다.) 우리 대학생이다. 하기에 대답을 하며 대화를 이어갔는데 내가 영어로 말이 통하는 사람이 정말 오랜만이라 반갑다. 내가 영어로 말 걸면 러시아 사람들은 쉬또!!!?(뭐?) 하면서 화낸다고. 러시아 사람들은 영어 하면 싫어하는 것 같다고 하니까 꺄르륵 웃으더니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영어를 배우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좀 알고 대학생들은 그래도 좀 잘할 거라 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들은 애초에 나쁜 의도로 나를 봤던 것이 아닌데 내가 너무 주변에서 쳐다보는 것에 민감해져 있나.. 처음 눈 마주칠 때 너무 좋지 않은 표정으로 봤나 하며 번뇌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 둘은 각각 일본어, 중국어를 전공하고 있고 중국어를 전공하는 친구는 몇 달 후에 중국으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보고 혹시 일본인이나 중국인? 하고 말을 걸었던 것 같다. 하필 중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나... 괜히 미안했다.
    내가 중국 유학 예정인 친구에게 혹시 중국인 만나본 적 있냐,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본 적 있냐. 물어보니 만나본 적 없다고 하더라...

    중국에서 겪게 될 일에 대해 말해주고 싶긴 했지만 잔뜩 설레 하는 것 같아서 가서 좋은 경험하고 많이 배워서 오라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만 말해줬다. 그래도 장점이 있긴 할 테니..

    대화를 나누는 도중 드디어 리셉션에서 방이 준비가 되었다며 가자고 하길래 인사 나누고 포옹하고 기념품 하나씩 주고 가려니 같이 사진 찍자고 해서 또 사진 찍혔다....

    숙소는 호스텔에서 걸어서 약 5분~7분 거리였고 평범한 아파트로 안내했다. 그전에 무슨 계약서인지 뭔지 러시아어로 가득한 서류뭉치 들이밀고 사인하라고 해서 뭔 말인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사인 많이 함... 이렇게 사기당하는 건가?!

    다행히도 이 숙소는 나 혼자 쓰는 것 같아서 이 날 처음으로 긍정적인 감정이 들었다.

    3분 정도 거리에 큰 마트가 있어서 며칠간 먹을거리 장을 봐왔다.
    물(탄산수였음. 라면 끓이다 토할 뻔함), 오렌지 주스(정체모를 단 맛 음료였음. 살구 음료였던 듯), 고기 한점(너무 짜서 이 세상 짠맛이 아니었음), 식빵(고기와 함께 샌드위치로 먹으려 했는데 내 입 안의 수분을 다 빨아감) 등등을 사 왔다. 

    가격은 462루블, 한화 9천원정도.
    제일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했던 젤리? 맛나보였다...

    베이컨인가 보다. 하고 샀던 고기인데 죄다 비계고 돼지가 날 때부터 바닷물에 담궈놓고 죽을 때까지 키운 것처럼 말도 안 되게 짰다. 이거 먹다 무슨 나트륨 과다 섭취로 뒤지는 거 아닌가 싶고 고기를 먹는 건지 소금 농축물질을 씹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

    결국 이것만 먹고 나머지는 다 버렸다.

    숙소 입구. 현관문 바로 옆에 화장실이 있고 곧바로 주방이다.

    주방에서 바라본 방. 방은 크게 1개 있었음.

    혼자 쓰기에는 너무나도 넓은 침대... 세명이서 나란히 누워도 될 정도였다. 혼자 자다 보니 무서워서 양 옆의 허전함에 어쩔 줄을 몰랐음.

    방에 딸린 테라스. 여기서 담배피면 벌금 문다고 러시아어로 적혀있었음. 누가 봐도 혹하게 생겼었는데?
    그리고 의문의 장롱에 한문 시트지가 붙어져 있는데 운, 남, 여 뭐 이런 것들이....

    우여곡절 힘들게 도착했으니 짐 풀고선 씻고 한숨 자고서 힘들게 온 이 동네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숙소 아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아.... 우직하게 1시간까지도 기다려봤지만
    함께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왔다 떠나도 버스는 끝내 오지 않았다. ㅜㅜ...
    날씨도 구리구리하고 난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김치찌개가 그리워졌다.

    결국 버스는 포기하고 그냥 구글 지도 켜서 근처 볼만한 것이 있는 곳으로 힘 없이 이동...

    역시 어디에나 있는 추모 공원. 여기도 있을 줄 알았지!

    자작나무가 많이 있었다.

    이 곳의 동상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총을 건네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추모공원 전망은 항상 이렇게 탁 트여있고 강가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넓어... 그리고 사람이 얼마 없어....
    좀 더 가까이 가서 표정을 살펴보았다. 비둘기는 눈치도 없이 왜 꼭 이런 동상에 올라가는 걸 좋아할까.
    소련의 흔적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저 공산주의 마크만 봐도 죄짓는 느낌이고 부정적인 느낌인데 이렇게 보면 또 신기했다.
    만 30세에 가족을 두고 떠나간 장병. 가족들이 많이 그리워했던 것 같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지치기도 하고 더 돌아다닐 기력도 떨어져서 숙소 돌아가서 기절했다. 이렇게 톰스크 1일 차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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