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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0609 크라스노야르스크 4일차, 헤헷 열차 날짜를 착각해버렸네! >_ㅇ
    #Road to Russia/ㄴ불곰국 일지 2019. 6. 29. 12:30

    전날 6월 8일, 나는 고된 산행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서 뻗어서는 다음날인 6월 9일 느지막한 시간에 행선지인 톰스크에 가는 방법을 리셉션 누나에게 물어보고 있었다.

    전에 알아본 바로는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톰스크를 가려면 직행은 없고 타이가라는 곳에서 열차를 한번 환승했어야 했다.

    아래에 가로질러가는 선이 횡단열차 노선상에 있는 포인트가 타이가, 상단이 톰스크.
    전체적인 노선 상에서 보면 이정도 거리.

    그러나 이상하게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크라스노-타이가 노선은 예매가 되는데 타이가-톰스크는 할 수 없었다.
    숙소가면 리셉션에 물어보면 잘 알려주겠지 뭐! 하고 느지막히 슬렁슬렁 가서 말해보니 리셉션 누나왈, 응? 너 노선 검색 안 되는데?

    응? 분명 내가 오기 전에는 됐는디요? 하고 러시아철도 어플을 켜서 검색해보니

    없어

    ????

     

    러시아 철도청 어플은 탑승하지 않은 티켓 내역을 확인 할 수 있는데 (탑승한 시점에서는 다 사라짐. 예매 내역도 볼 수 없음) 그곳에서도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니에요, 저 분명히 집에서 출력까지 해왔는데! 하고 방으로 호다닥 뛰어가서 예매내역 프린트한 종이를 들고서

    봐봐여. 여기 했자나여.

    리셉션 누나가 한참을 보다가 야, 이거 진짜 이상하다. 열차가 있는데 왜 조회가 안되냐? 하고 머리를 모아서 고민하는데

    에이 모르겠다. 일단 타이가까지 가면 뭔 방법이 있긴 하겠지.
    예매가 6월 8일자니까.. 이따 느지막히 체크아웃을 하고... 오늘이 며칠이었더라? 

    ?

    나는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리셉션 누나에게 물어봤다.

    ........오늘 며칠이져?

    오늘 9일이잖아.

    다시 프린트 된 것을 살펴봤다. 그러다 특이점을 발견했다.

    좌측 상단에 선명히 적인 6월 8일 17시 16분 열차

    오오오오오 님 이것좀 보셈! 저 열차 예매 어제(8일)임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이 상황이 너무 기가차고 코가막혀서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열차 날짜를 착각하고 있던 내가 멍청하디 멍청해서 껄껄껄 웃었는데
    리셉션 누나는 그저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넘모 불쌍해보였나...

    나는 그저 뭐 어쩌겠냐, 떠난건 떠난거고 어찌됐건 갈 방법은 있지 않겠냐 이런 심정이어서 솔직히 그렇게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4달 반 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한국행 비행기놓치게 되는데.... 사실 이건 복선이었던 거임.)
    그런데 비빌 언덕은 리셉션 누나뿐이어서 저 이제 톰스크 어떻게 감요? 물어보니 누나가 비장하게 말했다.

    버스탈래?

    버..버스요? 난 여기서도 트램이나 시내버스뿐이 못 타봤는데.. 고속버스?

    리셉션 누나의 말로는, 기차를 갈아타기에는 어려울 것이고 중간에 환승시간도 길고 아무래도 넌 한번에 가는 버스가 더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가격도 버스가 더 저렴하다고도 했다.

    버스는 몇시간 걸리나요?

    응 15시간

    ????????????

     

    15시간??? 저는 그냥 기차 탈래여....;; 해도 누나는 자꾸만 네가 걱정되서 그런다며 기차나 버스나 시간 비슷하고 버스가 더 편할 것이며 가기 좋을 것이라며 설득했고 버스타기 싫어 몸부림치던 나는 결국 버스를 타기로 했다.
    고맙게도 리셉션 누나가 러시아어 투성이인 홈페이지에서 본인의 카드로 예매를 대신 해주고예매한 내역도 프린트 해주면서 티켓 오피스에 가서 이거 보여주면 표로 바꿔줘서 탈 수 있을 거라며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나는 체크아웃이 12시인 숙소에 짐을 놓고 돌아다 다시 찾아서 터미널로 가기로 일정을 짜고 근처에 뭐 볼건 없나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당일 오후 5시 기차인줄 알았던 일정은 이미 내 착각으로 어제 지나갔고, 덕분에 갑자기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버스 15시간 타고 가게 된 상황이라 너무 얼떨떨하고 혼미한 정신상태로 비틀거리며 숙소를 나섰다.

    몇번을 봤는데 뭔지 모르겠던 성당.

     

    뭔 성당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고상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듯한 곳이었다. 영문으로는 Intercession Cathedral , 러시아어로는 Свято-Покровский кафедральный собор.
    숙소 앞의 레닌 아저씨.. 숙소 나와서 한블럭 아래에 레닌거리가 있다. 뭐 레닌과 관련이 있어서가 어니라 어딜가도 있는게 레닌거리다. 우리나라의 중앙로 같은 느낌?
    다시 예니세이강으로...

    분위기는 한강공원인데 물이 굉장히 맑고 오리, 비둘기가 사람을 전혀 무서워 하지 않았다.
    러시아 사람들은 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물들에 대해 자비심?이 많은 것인지 얘네들 주려고 퍽퍽하고 큰 빵을 사서 다 뜯어 던져주는 모습을 많이 봤다.

    이 모녀는 여자아이가 비둘기를 잡아서 안고 다니고 그러다 둘기가 도망쳐서 엉엉 울면 아빠가 다시 잡아서 인형처럼 안겨주고 했다. 귀여워서 사진찍어도 되냐고 하고 찍으려 했는데 아버지 인상이 넘모 무서워서 내 얼굴이 찐빵처럼 터질까 무서워서 말 못 걸어봄....
    그리고 우리는 비둘기가 한번 푸드덕 거리기만해도 히이익! 하면서 역병취하는데 러시아에서는 유해조류?취급을 당하지 않는지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늘 하나 없는 강변에 앉아 여유로운 모습의 사람들을 보며 있자니 나는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건가 또 현타가 오고..
    엉덩이 툴툴 털고 일어나 근처에 있다는 조각상을 찾아 움직였다.

    백마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동네의 동상, 기념상 중 8위라고 한다.

    ...ㅋ?

    크라스노야르스크 건설?기념일에 만든 상이라고 한다. 뭔가 말과 관련이 있는 것 같던데 이게 그렇게 대단한 상인지는 외국인으로서 알 수 없었다.

    이러고서는 정말 뭐 갈 곳도 없고 할 것도 없고 며칠 전에 갔던 증기선 박물관이라도 다시 가서 할머니와 얘기라도 더 할까 생각도 들었는데 이미 너무 애틋하게 작별인사를 해서 다시 가기는 뻘쭘했다.
    그래서 쓸데없이 걸어다니며 시간을 잘 보내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챙기고 터미널로 출발.

    솔직히 여기는 어지간하면 열차타고 지나가다 들르는 것 외에 목적은 없겠지만.. 이 숙소 정말 추천추천.
    마지막으로 레닌 아저씨와 한컷..

    버스 터미널은 약간 동서울 터미널 느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다보니 케밥집에 가서 주문을 했는데 일단 뜨거운 환경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케밥집 직원들은 대체로 화를 잘 내고 표정이 좋지 않았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뭐 소스나 양배추? 같은 것들 넣냐 안 넣냐 물어보는 듯한 말에 대답을 못하니까 한번 더 물어보고서는 내가 러시아말 못한다고 하니까 한심하단 듯 보고 한숨을 푹 쉬더니 만들어줬다.

    케밥 가게 구석에 찌글...

    음료는 스프라이트 수박맛!!
    헐 뭐야 수박맛? 신기하다! 하고 샀는데 수박의 화려한 빨간색 색채에 정신을 빼앗겨 그 밑에 그려진 오이 그림을 무시하고 말았고... 대참사가 일어난다..

    저 음료는 사실 수박 맛은 온데간데 없고 오이 진액맛만 나는, 오이는 피글만 먹고 냉면 위의 오이도 빼는 수준인 내가 평하자면 사상 최악의 혼종 음료였던 것이었다.
    처음에 설레며 한모금 마시고서는 수박 맛은 어디갔냐고!!!!! 마음 속으로 샤우팅을 하며 버렸다. 이건 나같은 오이혐오자가 먹을 수 있는 음료가 아니었어...
    어쩐지 열차타면 러시아 사람들이 식빵에 오이만 잘라서 끼워 먹거나 오이만 아삭아삭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했더니 이런 끔찍한맛을 스프라이트에 접목시키다니...

    다행히 케밥은 실한 편이었다..

    케밥집에서 간단히 배를 채우고서 터미널에서 표를 바꾸려고 매표소에 줄을 섰더니만
    기차탈 때도 그렇고, 버스도 그렇고 내가 한국인이라 그런가 왜이리 줄이 줄지를 않는데에서 조급함과 답답함이 느껴지는지...
    한사람 한사람 빠지는 속도가 말도 안되게 느리다. 승객이 처리하기 까다로워서인지, 직원이 손이 느려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승객이 뭔 서류니 뭐니 잔뜩 창구 안으로 들이미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뭐 국가유공자 할인 이런게 있어서 할인을 받는 용도인지 무슨 할인제도가 있는건지 아무튼 중장년의 승객이 대체로 그런 경우가 많았고... 그걸 잔뜩 창구로 들이밀고 받고, 또 뭐를 다시 주고 몇번이나 반복한다.
    앞에 10명도 없는데 30분이 훌쩍 넘어가는 건 예사였다.

    무거운 짐을 처음에는 지고 있다가 바닥에 내려놓고 앞 뒤 양 옆 사람들과 친숙해질 무렵 내 차례가 와서 즈드랏스부이쩨~ 하고 버스 예약내역 출력한 것과 여권을 함께 줬더니
    머라머라 손가락으로 내 가방을 가리키며 하는데 내가 무슨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니 무표정으로 내가 줬던 종이와 여권을 다시 돌려주고 손짓으로 훠이 훠이하면서 가라고 했다.

    ? 뭔데요..

    버스 터미널인데 이용객 수에 비해 앉을 공간이 터무니 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내가 너무 외국인+1, 등에 붙은 커다란 짐+2 버프로 넘모 눈에 띄었나 사람들이 많이 쳐다보는데 다들 심각하게 쳐다보니 그냥 신기해서 보는거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마냥 불편했다.
    나중에 의자에 자리가 나서 앉았더니만 뭔 부랑자 모습을 한 아저씨가 와서 뭐라뭐라 하길래 그냥 노. 노. 하니까 주변에 사람들이 해석도 안해주면서 웃고 ㅡㅡ 그냥 터미널 와서는 기분이 계속 나빴다.

    톰스크행 15시간 버스가 도착하고.. 검표하시는 분에게 여권과 종이를 들이미니까 또 나를 붙잡고 한창 말을 하더니 못 알아들으니 내 손을 잡고 여전히 길게 사람들이 늘어서있는 줄을 뚫고 매표소 앞으로 들이밀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뭐여 내가 뭐 잘못했었나? 했더니만 짐을 싣으려면 추가 요금을 내야한다는 것 같았다. 자꾸 가방을 가리키길래 아진. 아진. (하나)라고 하니까 이제야 해결되었다는 듯 매표소 직원과 검표원 둘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가방 하나면 100루블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100루블 지폐를 하나 꺼내니까 더달라고 했다.
    더? 그럼 한장 더.. 하고 200루블을 꺼내니까 갑자기 뒤에서 머리를 빡빡 민 형님이 내 지갑을 가져가더니 500루블 지폐를 꺼내서 줬다.

    고, 고마워요... 많이 답답하셨나요..

    잔돈을 거슬러 받고보니 짐 싣는 비용이 무려 280루블(5500원정도)이었다. 버스표가 3만6천원이었는데... 이렇게 짐 표까지 사고나니 계속 기다려줬던 검표원 어머니가 다시 내 손을 잡고 버스로 안내해줬다.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었지만 말이 안 통해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러시아 사람들이 고마웠다.

    버스에 타고보니 짐을 따로 싣지 않고 자리 밑에 구겨넣으면 추가 요금을 내지 않는지 내 짐만한 것들을 잔뜩 좌석 밑에 구겨넣은 모습을 많이 봤다. 이런 팁이 있었구나.. 그래서 처음 매표소에서 너 짐 따로 싣을거야, 말거야? 를 물어봤던 것 같고 검표원 어머니는 쟤 짐 꼬라지를 보니 싣어야겠구나. 싶어서 매표소로 데려간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버스를 타니 옆자리에는 젊은 여자가 있었고 내가 즈드랏스부이쩨 인사를 하고나서는 내릴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15시간 어떻게 타고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냥 아 이 시간이면 기차탔으면 누워서라도 자는데.. 하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고... 화장실 가고 싶은데 도중에 자다 깨보니 마침 버스가 정차하고 기사님과 승객들이 많이 내리길래 눈치보고 호다닥 내려서 알혼 갈때처럼 식당에 딸려있는 화장실을 썼었다.
    다녀오면서도 나를 두고 버스가 가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떨렸다;
    좀 일찍 왔는데도 기사님이 없으면 밖에서 바람도 좀 쐬고 했는데 비가 주륵주륵 많이 왔었다.

    나중에는 3시간에 한번씩 휴게소? 비슷한 곳에 들르는 것 같았는데 용기가 좀 생겨서 들어가서 물도 사고 했다.
    아진 보디 빠좔루스따~ 니엣 가스. 말렌끼 말렌끼. (물 하나 주세요. 가스 아닌거. 작은거.) 라고 하니까 직원이 웃었다. 생존 러시아어만 익힌 나.... 끝까지 회화는 잘 익히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그리고 이 여정은 정말 배고팠다. 진짜 배고팠다.
    자꾸 깨서 눈뜨고 있으면 배고파서 아, 배고프니까 빨리 자야돼. 하면서 자고 배가 곯는 느낌이 들면서 꾸륵 꾸륵 소리 날 것 같으면 물 마시고 그랬다 ㅠㅜ

    그렇게 버스는 15시간 후 6월 10일 아침 8시경 톰스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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