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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레 케르테스 - 운명
    #크레마 샤인 2017. 9. 24. 16:51


    나는 책을 볼 때 자기계발서를 제외하고는 딱히 장르를 가리지 않긴하지만 왠지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은 심오해보이고 뭔가 장벽이 있어보여서 선뜻 손을 대지 못했다.

    어느날 홀로코스트에 관해 구글링을 하다 알게 된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호오.. 실제로 수용소에 끌려갔다 살아 돌아와서 책을 썼단말이지.. 대단한걸. 노벨 문학상이면 뭔가 보통은 아닌 책이겠지. 하고 흥미가 생겼다.


    사실 홀로코스트나 나치 수용소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매체에서 다루고 있으므로 낯설거나 대충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외에도 영화로는 쉰들러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사울의 아들 등등..
    지금까지 많이 이야기화 되었고 아마 앞으로도 쭉 계속 관련 컨텐츠는 생산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나치의 직접적인 점령이나 통제는 받지 않았지만 대신 일제치하에 있었고
    맛탱이가 갈때까지 간 이웃나라에 의해 비슷하게 고통받은 역사를 가졌으니 홀로코스트에 대해 상당한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사실 역사에 관심이 있고 여행가면 박물관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유럽에 갔을 때 폴란드의 오슈비엥침을 가서 과거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가야했지만..

    주변에서 보고 느낀 것이 컨디션이나 기분을 좌우할 정도로 내적 기복이 심한 나로서는 차마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봤자 뭐하나, 결국 뮌헨에 머무르면서 고민 끝에 근방의 다하우 수용소를 다녀왔었다. 그리고 며칠동안 우울한 기분으로 악몽까지 꿨다.


    (1938년 다하우 수용소는 정치범을 수용하던 곳이었지만...)

    당시 다녀온 다하우 사진.

    아무튼 잡설이 많았다. 출판사 리뷰를 읽어보자.

    1944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1년 전. 헝가리는 1944년 독일군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다. 이로써 헝가리에 살고 있는 수많은 유태인들의 운명도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부다페스트에서 아버지와 계모와 함께 살던 15세 소년 쾨베시 죄르지도 유대인 공동체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아버지가 근로봉사에 징집 명령을 받고 죄르지도 소년 근로봉 사에 동원된다. 그는 학교를 떠나 이제부터 공장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몇 개월 후 죄르지는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버스에 실려 도시의 반대편 끝자락에 있는 한 벽돌공장으로 보내진다. 그는 전쟁에 필요한 중요한 일을 하게 된다는 확신 속에 기꺼이 근로봉사 소집에 응하고, 잠시 후 수많은 다른 지원자들과 함께 기차에 올라탄다. 이로써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로 향하는 길이 시작된다. 강제수용소에 도착한 죄르지는 그곳에서 받은 인상을 상세하게 기술하면서 거기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집단학살 체제의 만행을 중심에 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들과 일상을 새롭게 극복해나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언젠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접지 않고서.

    내가 읽은 것은 '다른우리'라는 출판사 것이었는데 도서 소개 페이지의 관련자료에 행복 지수 어쩌고 하면서 이 책을 다 보고 느낀 점과는 전혀 동떨어지고 생뚱맞은 이야기를 잔뜩 달아놨다.
    솔직히 말하자면 리뷰도 그렇고 줄거리도 그렇고 이 내용이 행복에 관한 힘차고 밝은 미래를 위한 소설인양 써놨더만 공감이 되지 않는다.
    동 소설로 민음사에서도 출판이 되었는데 그 쪽은 행복 타령, 밝은 미래 타령을 써놓지 않아서 더 나은 것 같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본인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았기에 소설 속의 나 = 그 시절의 작가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일단 책을 읽어보면 말투가 상당히 딱딱하고 보이는 것을 서술하며 때로는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화자 때문에 적응하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그리고 초장부터 아버지가 노동 봉사에 소집되어 가족 곁을 떠나게 되어 이별을 준비하게 되는데
    주변 인물들의 행동과 사소한 것, 그때 생각했던 것들을 세세하게 서술하기에 좀처럼 따라가기 힘들기도 하다.

    그런 와중 생활에 점점 제약이 많아지고 또래 유대인 친구들과 공장에 징집되어 일을 하던 버스에서 갑작스러운 검문?으로 인해 수용소행 열차에 실려가게 된다.
    하지만 당시 수용소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했고 그 곳의 처지에 대해 알 수 없었으므로 그저 독일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을 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약속을 해달라고 했을 때 나는 무슨 약속을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내가 약속을 하자 아버지는 별안간 나를 와락 껴안았다. 설마 끌어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던 중에 벌어진 순식간의 일이었다. 나는 그 때문에 눈물이 났는지, 아니면 그저 너무 지쳐서 눈물이 났는지는 잘 모르곘다. (중략) 그러나 이유야 어떻든 내 눈물이 아버지 마음에 작은 위안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는 이제 자러 가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무척 피곤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불쌍한 한 남자에게 이 날에 대한 좋은 기억을 안겨주고 노동 수용소로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독일인들에 대해 들려오는 이야기는 무척 많고 다양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독일인을 직접 겪어본 적이 있는 중년층들은 독일인들을 좋게 생각했다. 유대인들에 대한 편견만 차치하고 나면 독일인들은 본래 깨끗하고 반듯하고, 질서와 시간을 잘 지키고, 노동을 좋아하고, 다른사람들에게서 그런 특징들을 확인하게 되면 존경도 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런 내용은 내가 독일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도 대충 비슷했다. 게다가 독일인들과 함께 있으면 나한테 득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중략) 이런 기회에 세상을 좀 더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잠시 품어 보았다.

    지금이야 모두가 나치가 전쟁 말기에 어떤 일을 벌였는지, 소설 속에서 화자가 보고 경험하게 되는 것들이 어떤건지 다 알 수 있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설레임도 있었을 테고 절망이 다가 아닌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에 대해서 나중에 알게된 정보를 끄집어내서 그때 ~~한 것은 ~였다. 알고보니 그것은 ~였다.는 식의 첨언을 하지 않고 그때 보고 느낀 솔직한 생각과 감정만을 말하고 있다.
    주로 그의 여정에서 함께 했던 당시 사람들,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전해주는데 읽다보면 그들도 그냥 평범했던 사람들었는데 살아돌아온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창한 여름, 기차는 시 외곽에 있는 교외선 선로에서 출발했다.
    위와 옆이 닫힌 벽돌색의 화물열차였다. 각 칸마다 60명씩 들어앉아 있었고, 각자 짐도 있었다. 완장을 두른 사람이 미리 설명해 준 그대로였다. 빵과 커다란 고기 통조림 더미가 보였는데, 벽돌공장에서 출발한 사람들을 위해 엄선한 물건들이었다. 나는 길을 떠나는 우리를 위해 얼마나 주의 깊고 친절하게 배려하는지, 이미 떠나기 전날에 알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일종의 경의를 갖고 우리를 대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 건물을 알아보았다. 뒤에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본 광경을 전해 주었다. 사람들은 내게 그 건물에 뭐라고 씌어 있는지 알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었다. 새벽 햇살을 뚫고 건물의 열차 방향 맞은편 쪽 좁은 면, 그러니까 벽의 윗 부분에 적힌 두 단어를 읽을 수 있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였다.


    열차는 며칠 밤낮을 달리고 섰다 갔다를 반복하며 어디론가 도착했는데, 그곳은 바로 아우슈비츠였다.
    열차의 문이 열리자 머리를 빡빡 깎고 줄무늬 죄수복을 입은 죄수들이 열차 안을 정리하는데 이때도 화자는 '나는 여기 노동자로 온거야.' 라는 생각으로 곧 자신이 그들과 같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모습이다.

    내게는 그들이 의심스러워보였고, 모든 면에서 낯설었다. 그들은 우리 아이들을 알아보고는 무척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곧이어 빠르고도 급하게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중략) 이번에는 우리의 나이를 몹시 궁금해했다. .... 우리는 각자의 나이에 따라 '열네 살, 열다섯 살'이라고 속삭였다.
    "열여섯 살."
    난 놀라서 그중 어떤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다.
    "일할거야?"
    그 사람은 이렇게 되묻고는, 주름 투성이에다 움푹 들어간 눈에서 나오는 공허한 시선으로 내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물론이죠'라고 대답했다. 결국 일하려고 이곳에 온 것이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듣고 그는 거칠고 뼈대가 굵고 누런 손으로 내 팔을 잡고 힘차게 흔들었다.
    "열여섯 살... 알겠어?..... 열여섯 살...."
    그는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이 문제가 그에겐 중요한 모양이었다. 아이들과 급히 상의한 후 나는 약간 기분이 누그러져서 동의를 표했다.
    "좋아요, 난 이제 열여섯 살이에요."
    우리 중에는 남매가 있어도 안 되었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해도 실제 사실과는 전혀 달랐다. 그리고 아주 별나게도 쌍둥이가 있어서도 안 되었다. 이 말에는 나도 무척 많이 놀랐다. 하지만 나를 더욱 놀라게 한 말이 있다.
    "누구나 일해야 돼. 지쳐 보여서도 안 되고 아파서도 안 돼."


    난 주위를 둘러보며 여기가 대체 어디인지 잠시 가늠해 보았다. 기차역은 멋졌다. 우리가 서 있는 곳에는 흔한 자갈들이 있었고, 약간 떨어진 곳에 잔디가 펼쳐져 있었다. 잔디에는 노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중략) 번쩍이는 금속의 가시철조망이 쳐진 기둥들이 일렬로 똑같이 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추측이 갔다 .저곳에는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비로소 처음으로 죄수들이 나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흥미를 느낄 만한 여유가 처음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궁금해졌다.


    때때로 여러 가지 명령을 들을 수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예컨대 기계 조립 전문가, 쌍둥이 남매, 신체 장애자들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라는 지시가 있었다. ... 어린아이들도 따로 분리되어야 했다. 이들은 모두 특별 대우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시 말해 일을 시키는 대신 학교를 보내주고 온갖 특전을 베풀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 줄에 있던 몇몇 어른들은 우리에게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아직 내 귀에는 열차에서 내리기 전에 죄수들이 했던 경고의 말들이 생생했다.

    (중략)

    그리고는 바로 내 차례가 되었다. 의사는 신중하고 진지하며 주의 깊은 눈초리로 나를 꼼꼼히 관찰했다. ... 의사에 대해 곧바로 신뢰감이 생겼다. 사람 좋아 보이는 호감이 가고 길쭉한 얼굴은 깔끔하게 면도가 되어 있었고, 가늘고 긴 입술과 밝고 선명해 보이는 눈동자는 파란색 아니면 회색이었다. (중략) 그와 동시에 의사는 조용하면서도 분명한 목소리로 내게 '몇 살이니?'하고 물었다. 교양인의 목소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냥 덧붙이듯이 공연히 해본 질문이었다.

    "열여섯 살입니다."
    (중략)

    의사는 한 손을 내 얼굴에 대고 다른 손으로는 방향을 가리키면서 길의 다른 쪽으로, 즉 쓸모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를 밀어냈다. 아이들은 미리 함성을 지르고 기쁘게 웃으면서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아이들의 명랑한 얼굴을 보면서, 우리 쪽과 저쪽 사람들을 정말로 구분해 주는 차이가 무엇인지 이해했던 것 같다. 내가 제대로 느꼈다면, 우린 선택된 사람의 부류였다.


    이 짧은 거리를 가는 동안 주변에서 본 것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축구장을 보고 대단히 기뻤다. 바로 길 오른쪽에 위치한 커다란 초원에 있었다. 초록색 잔디, 경기할 때 꼭 필요한 흰색 골대, 흰색으로 그어진 선, 모든게 다 있었다. 축구장을 보니 축구가 하고 싶어졌다. 느낌이 새로웠다. 모든 게 최고였고 일사불란했다. 우리 아이들은 '일을 끝낸 후 축구하자'고 말했다.

    (중략)

    전부 대단히 깨끗하고 예쁘고 멋졌다. 정말이지, 벽돌 공장에서 이곳으로 가자고 결정 내린 우리의 판단은 틀림없이 옳았다. 단 한가지만 부족했다. 그게 무엇인지도 알아냈다. 말하자면 집들 주위에 사람이 움직이는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민들이 일하러 가고 없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마당을 지나 계속 가니, 또 다시 문과 산울타리, 그리고 철조망 울타리가 나타났다. 저절로 열리고 닫히는 시스템이었다. 그것은 마침내 내 눈앞에서 흐릿해지기 시작했고, 모든 게 혼란스럽게 뒤죽박죽 되기 시작했다.


    이즈음 우리는 무슨 냄새를 맡았다. 코끝으로 강하게 밀려드는 냄새였다. 정확히 어떤 냄새라고 표현하기는 곤란했지만, 달콤하고 끈끈한 듯하면서 화학 제품 냄새가 났다. 먹은 빵이 목구멍으로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고약했다. 어디서 냄새가 나는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왼편 국도 뒤쪽으로 보이는 굴뚝이 진원지였다. 털모자 남자의 말로는 '가죽 공장'의 굴뚝이라고 했다. (중략) 주위에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우리가 이 공장에서 일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고, 티푸스나 이질이나 그밖의 전염병에만 걸리지 않으면 우린 곧 훨씬 더 편한 곳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이 우릴 안심시켰다.

    (중략)

    "여기 정말 전염병이 있습니까?"
    "물론."
    "환자는 어떻게 됩니까?"
    "죽어."
    "죽은 사람은요?"
    "불에 태워."
    순간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사람들의 얼굴에서 서서히 뭔가 의심스러운 빛이 스쳐가고 있었다. 아까 보았던 그 굴뚝은 그냥 '가죽 공장'의 굴뚝이 아니라 '인간 가죽 공장의 굴뚝이었다. (중략) 나도 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전염병만으로 그렇게 많은 사망자가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우슈비츠에서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지 않는 사흘을 지내고 나니 화자는 다행히도 '부헨발트'라는 수용소로 이동하게 된다.

    우리가 갈 곳은 '부헨발트'라고 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이름 같은 것에 현혹되어 장밋빛 희망을 가지지 않기로 마음먹었음에도 우리와 헤어질 때 몇몇 죄수들의 얼굴에 어른거린 그 표정이 지어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은근한 친절과 온정, 어쩐지 부드럽고 꿈결 같고 부러운 듯한 감정을 담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을 짓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아우슈비츠에 오래 살았고, 정보에 밝은 죄수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심지어 팔에 완장을 두르고, 모자와 신발에서 다른 죄수와 차이가 나는 좀더 높은 직위의 죄수들도 있었다.


    어쨌든 이제서야 나는 아우슈비츠에서 우리를 떠나보냈던 사람들의 얼굴에 어려 있던 그 표정을 십분 이해할 것 같았다. 곧 나도 부헨발트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아우슈비츠에 비해 조금이나마 좋아진 환경에 대해 화자는 만족한다.
    왜 이렇게 되었지 라는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니라 먹을 것을 더 주는가, 물을 마실 수 있는가에 대란 생존환경이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짜이츠'로 이동하게 되고 열악해져가는 상황과 길어지는 수용소 생활에서 '어지간한 인맥과 우정은 생존의 법칙에 따라 단번에 끝장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빈약한 식사와 고된 노동으로 서서히 몸이 변해가고 쇠약해지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는, 내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데 3개월이면 충분했다. (중략)
    그러나 이제 피부는 더 이상 팽팽하지 않고 주름진 채 아래로 축 늘어졌고 노랗게 변하고 비쩍 말랐으며, 온통 부스럼, 기미, 찢긴 상처, 주름, 각질 투성이었다. (중략) 나는 내 몸이 변하는 속도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몸을 덮고 있는 살가죽과 탄력, 그리고 살점이 내 뼈로부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녹아 없어지고 썩어 문들어지면서 점차 완전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날마다 변하는 내 모습에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중락)

    이 날이 끝나갈 때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아침 이것이 내가 일어설 수 있는 마지막 아침일 거라고 생각했다. 또 걸을때마다 다음 걸음은 내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몸을 움직일 때마다 더 이상은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은 당분간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무엇으로도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일이나 상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수없이 노력하고 시도하고 애를 썼는데도 아무소용이 없자 나도 마침내 점차 평화롭고 안정된 상태로 접어들었다. (중략) 나는 서 있는 것이 피곤하면 진창이든 웅덩이든 가리지 않고 그냥 주저앉아버렸다. 내 옆에 서 있는 사람들이 억지로 나를 일으킬 때까지. 추위 ,습기, 바람 혹은 비도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없었다. 나는 그런 환경들에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런 게 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했다. (중략) 나는 더 이상 겉으로라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인간들은 이러는 나를 보고 심하게 두들겨 팼지만, 그것으로도 나를 더 이상 어쩌지 못했다. 오히려 나는 매맞는 시간까지 벌었다. 가령 그 인간들이 나를 때리기 시작하면 나는 그 즉시 바닥으로 픽 고꾸라져 버렸는데,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됐는지 전혀 느끼지를 못했다. 바로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딱 한가지 내게 점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증상이 있었다. 극도의 신경불안 증세였다. 누군가 내가 하는 일에 간섭을 한다든지, 누군가 내 몸에 살짝 닿기라도 한다든지, 아니면 행진을 할 때 내가 보조를 못 맞춰 뒤에 있는 사람이 내 뒤꿈치를 밟기라도 하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장 그 인간을 즉석에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한껏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화자는 무릎의 고통이 심해져 결국 무릎 치료를 위해 당분간 일반 수용소 생활을 벗어나 의무실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의무실 생활 또한 제대로 된 치료나 간호가 없기에 죽다 살기를 반복한다.
    그 중 한 번은 빈 침대가 없어 기존 수용소로 한 명을 보내야 하는 상황에 의사가 그를 보내려 하지만 간병하는 사람이 다른 환자를 지목해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홀로코스트의 이야기를 보면 대체로 운, 정신력, 인맥, 때에 따른 기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아마 이 오락가락 하는 상황에서 간병하던 사람이 그래도 화자를 알려줬다면 성치않은 몸으로 강제 노동 생활을 했을테고,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병상에서 서서히 회복되어가는 와중에 수용소는 해방되었다.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로 돈이 없어 전차를 무임승차했다 욕을 얻어먹기도 하면서 화자는 1년만에 고향에 돌아온다.

    그 사이에 가족에게 일어난 일들은 책에서 확인해보세요. 스포가 될 수도 있으니..


    다 읽고나니
    이 소설의 서술방법은 기존의 홀로코스트 이야기와 조금 다른 면이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치가 원망스럽고 증오스럽다.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 가족을 만나고 싶다.

    라는 서술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없는 것 같지만 있을 수도 있으므로 거의.)

    그저 내 상황이 이렇고, 이런 사람들이 이런 말을했고 행동했다.
    그리고 그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렇게 되었고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이렇게 서술이 된다.

    그리고 위에서도 한 번 언급했지만 당시의 생각과 감정에 충실하고 그 이후에 알게 된 것들을 과거의 상황에 곱씹으며
    그 때의 나는 몰랐다, 라거나 이런 것들은 사실 이러이러한 것이었다. 라는 부가적인 설명도 없다.

    그렇다보니 그냥 영문도 모른채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없는데 끌려가서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가짜 유대인새끼라고 욕을 먹던
    헝가리의 15세 소년의 입장에서 함께 그 행적을 함께 따라갈 수 있는 것 같다.

    보통은 나치와 그 부역자들이 유대인을 처참하게 살해한다거나 그런 것도 나올 법도 한데
    말하다 싸대기를 맞는다거나 시멘트 자루를 옮기다 넘어져서 맞고 감시당했다거나
    그 외에는 또 잘 나오지 않는다.
    (탈옥했다 잡혀온 세 사람의 이야기가 언급되긴 하지만 그들이 자아내는 공포감이라거나 정확한 형태 등은 언급하지 않음.)

    의도적으로 서술을 하지 않은 것인지, 본인이 눈으로 본 것만 쓴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보니 총체적으로 수용소에서의 생활, 그 과정, 홀로코스트라는 입장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버티다 집에 돌아온 이야기. 이쯤으로 남게 된다.
    이런 점이 또 다른 매체의 표현 방식과 달라서 더 평가 받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무튼 다시 초반의 출판사 리뷰를 보면

    "강제수용소에 도착한 죄르지는 그곳에서 받은 인상을 상세하게 기술하면서 거기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집단학살 체제의 만행을 중심에 둔 것이 아니라, //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들과 일상을 새롭게 극복해나 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언젠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접지 않고서."

    라고 하는데 //이전의 말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그 뒤는... 그냥 어떻게 저렇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니(사실 포기도 함) 여차저차 해방이 되었네요... 살게 됐네요.. 이런 느낌이지
    안돼 난 죽을 수 없어 돌아가야 해! 이깟 병에 죽을 수 없어! 이러지 않는데 도대체 왜 저 희망과 극복이라는 말이 나오는지는 도통 모르겠다.


    + 결론

    홀로코스트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읽을법 함.
    서술 방식과 메세지가 기존의 매체에서 다뤄온 홀로코스트와 다른 점이 독특함.

    비추천) 진행방식이 드라마틱할거라 생각하거나 초반부터 흡입력이 넘치지 않으면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 사람.
    작중에 등장했던 친구들과 여러 사람의 생사를 꼭 확인해야 하는 사람.(소설에서 확인할 수 없음.)
    추천) 생존자에게 이야기를 듣는것처럼 생생하게 느껴보고 싶은 사람.

    평점은 8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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