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27 하바롭스크 1일차, 하바롭스크 현지인의 가이드를 받다.
- 하바롭스크에서 만난 첫 기차 친구.
본격적인 여행 전 블라디보스톡 2박 3일. 길어보이지만 입국해서 숙소 찾아가는데 1일 써버리고 다음날 적응 좀 해볼까? 하고 깔짝거리고선 다음날 열차를 타버렸다.
2박 3일이 너무나도 쏜살같이 달아나버려서 숙소에서 나가기 싫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리. 나는 떠나야만 했다.
첫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나니 곧 차장 어머니가 시트를 나눠주고(열차 예매시 포함으로 기본 체크가 되어있음) 그걸 내 자리의 매트리스와 베개에 씌워야했다. 열차를 탈 때마가 이 과정을 거치고서야 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10시쯤 되니 열차가 어둑해지도록 메인 조명을 꺼버리고 그 즈음 악취가 나는 내 윗 사람의 맞은편 사람이 어디까지 가냐? 고 질문을 했다.
하바롭스크까지 간다고 하니 자기는 하바롭스크에서 나도 자랐다며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기 시작하는 것이어따. 어느정도 영어를 할 줄 아는 드문 러시아인이었는데 다소 힘든 부분은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대화를 나눴다.
그러더니만 다음날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응? 그래도 되는거야? 믿어도 되는건가? 라는 생각에 불안함이 먼저 엄습했다. 그것도 그렇지만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내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은 자기 나쁜사람 아니라고 자기 고향의 좋은 곳을 많이 알려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고민하다 결국 다음날 가이드를 받기로 했다.
처음으로 러시아 사람과 대화 같은 대화를 했는데 이름은 블라디미르였다. 줄여서 보바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다.
오오.. 블라디미르.. 예전부터 개간지나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푸틴도 이 이름이잖아.
?
밤이 늦었고 서로 피곤한 기색에 내일 약속을 하고서는 굿나잇 인사를 나누고서야 비로소 적막함이 찾아왔다.
나름 푹신하고 편하다 생각했던 매트리스와 제공된 폴리재질의 담요는 나를 사우나에 있는 사람처럼 만들었다.
더워....
잠을 잘 수가 없어....
가지런히 누워서 내 매트 위에 있어야하는데 자꾸만 팔 다리를 바깥으로 내밀게끔 했다.
어쩐지 자기 전에 본 다른 러시아 남자들이 다 웃통까고 자더라니.. 더워서였어...
진짜 난 누우면 금방 잠들기가 장점인 사람인데 한시간 넘게 뒤척인 것 같다.
그러다 배고파서 테이블에 뭘 놓고 먹으면 맞은편 러시아 어머니가 시끄러워할까봐 자리에 앉아서 전날 산 쿠키를 먹는데.. 먹다가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 허억? 하고 놀라서는 다시 졸다 뒤로 넘어가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났을까 누가 내 종아리를 퍽퍽 때리길래 흐억! 하고 튕겨 오르듯이 상체를 일으키며 잠에서 깼다.
차장 어머니가 근엄한 표정으로, 너 같은 애들 질리게 봤다는 감흥 하나 없는 표정으로 하 바 롭 스 크. 다섯글자만 말하고 사라졌다;
다른 여행기에서 깨워준다는 말은 봤는데 정말 깨워주는구나.....
아마 한시간 전 쯤에 깨웠지 싶은데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 차장 어머니가 또 와서 시트를 개라고 하는 걸로 알아듣고 막 열심히 빼서 개고있는데 오늘 가이드를 하기로 한 맞은편 2층의 첫 기차친구가 안그래도 된다고 헀다.
그러더니 그냥 슥슥 빼서 둘둘 말아 지나가는 차장 어머니에게 주니까 그냥 그대로 가져가심..
뭐냐 나는 왜 그렇게 열심히 좁아터진데서 곱게 개고 있었던거냐.
그렇게 열차는 계속 달려 하바롭스크에 아침 8시경 도착.
기차 친구와 함께 역 밖을 나서는데 어김없이 딱시-하며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막 머라머라 러시아어로 굵고 빠르게 말하면서 시원스럽게 뿌리치는 기차 친구.. 현지의 아는 사람이 이토록 든든한거였나. 나 혼자였으면 호에엥 러시아 아저씨들 넘모 무서워양 ㅠㅠ 하면서 둘러쌓여 있었겠지.
기차 친구는 역 앞에서 너 숙소는 저쪽으로 가면 되고 여기 밥 먹을 곳은 저기랑 여기 여기 하며 알려주고 집으로 떠났다. 나중에 숙소로 찾아온다는 말을 한 것 같았는데 이건 기억이 모호했다.
물론 언니들이 사진 더 좋아하긴 하지만 불곰국 형님들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 도시에 이름을 남긴 하바로프의 동상은 인기가 많았다.
또 다른 낯선 도시에 도착한 나는 더 허해진 마음을 달래며 역 바로 앞의 패스트푸트점을 갔는데 핵비쌈.
러시아 물가를 생각했을때 6천원이 넘었으니 이건 좀... 싶었다. 가격도 그런데 퀄리티가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거기서 배를 채우고 숙소를 갔는데 1시 체크인에 10시 즈음 도착한 것 같다.
숙소는 70년대 쯤에 만들어진 것 같은 낡은 아파트였는데 어둑어둑함이 깔려있고 특히 낡은 엘리베이터가 인상적이었다. 처음 접하는 낯선 환경에 숙소 문 앞까지 가는 여정이 무서웠다.
숙소에서는 빠른 체크인 비용으로 300루블을 더 받는다며 짐 두고 몇시간 다니다 체크인 시간에 오면 그냥 기본 비용만 받는다고 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는 온통 눕고싶다. 씻고 싶다. 자고 싶다. 뿐이어서 다.다.다 (네). 하고 그러기로 했다.
숙소 아저씨가 타준 러시아 홍차...! 내가 러시아 홍차를 마시는구나 하면서 괜히 웃었다.
추가금 덕에 개운하게 씻고 침대에 누워서 쉬다 잠깐 잠도 자고 기차 친구의 연락을 기다렸으나 15분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기다리다 어디라도 가야겠다 싶어 어디로 가고있는 중이라고 메세지를 보내고 이동.
나와서는 뭣도 모르고 그냥 큰 길 따라 내려가자 하고 광장에 갔는데 운이 좋았는지 마침 하바롭스크에서는 어떤 기념행사를 하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몽골, 카자흐스탄과 하는 군 행사였던 것 같은데 여기는 행사중에 뒷 선에 있는 군인들이 옆 사람이랑 노가리도 까고 몸을 흔들흔들 흔들기도 하고.. 저기 군대는 저래도 되는건가? 신기했다.
그리고 어딜가나 행사를 하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꽤나 그런 것들을 좋아하고 특히 군인, 군대(군사 분야?)에 더욱 관심있어하는 것 같았다.
레닌 광장.. 어딜가나 레닌 광장, 레닌 길, 레닌 상은 꼭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건물이나 뭐 길, 공원을 아낌없이 그냥 대충 지은 것처럼 넓찍하게 여기저기 흩뿌려 만드는 것 같았다. 우리는 조막 조막하게 힘겹게 꾸겨넣는 느낌인데 여기는 그냥 아- 그까이거 대충 여기 크게 만들어버려. 이런 느낌?
- 하바롭스크의 열정적인 가이드.
광장에서 이 퍼레이드를 보다 기차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만난 후... 나는 고향 사랑이 넘치는 지역 원주민의 의욕에 4시간만에 대여섯군데를 들르는 초 강행군을 하게 되었다...
정말 대단한 친구였어...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Serafima Sarovskogo 성당. 동남아에서 볼 법한 건물 같기도 하고 독특했다. 끊임없이 들리는 종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트립 어드바이저에는 북쪽 공원. 이렇게 나오는데 Severnyy 공원. 예쁜 곳이 많아 웨딩 촬영하러 많이 온다고 했는데 규모도 크고 호수도 있다. 저 위에 성당도 이 안에 있다.
하바롭스크에서 아무르 강을 건너는 긴 다리가 보이는 언덕에 탑 같은 것이 있다. 다른 곳에 비해 잘 꾸며진 곳이 아니고 좀 폐허같은 장소에 뜬금없이 뭐가 높게 있는 것 뿐이라서 여기를 왜? 라고 생각했더니만 5000루블 지폐에 나오는 곳이라고 너 그 지폐 없냐고 물어봤다.
나는 고액권이라고는 1000루블 뿐이라서 없다고 하니까 지갑을 뒤적거리더니 나도 없다며 아무튼 5000루블에 있는 곳이라며 열정적으로 알려줬다.
그리고서는 탑 위로 흙길이 난 언덕 위로 안내하더니 갑자기 중턱에서 여기서 사진 찍으라고 했다. 나는 영문도 모른채 시키는대로 으..으응... 하고 찍는 와중에 기차 친구가 저 옆에 나무가 방해하고 있다며 아쉬워 했었다. 나는 5000루블을 본 적도 없어서 응. 그렇구나. 하고 영혼없이 말했는데
이제와서 여행기 쓰려고 찾아보니
쩌네.
왜 굳이 이 곳을 데려왔는지 5달이 더 지나 알게 되었습니다 ㅠㅠㅠㅠㅠ 고마워 블라디미르..... 왜 나무가 가린다고 대신 화냈는지도 알겠어...
두번째 사진 좌측에 높은 것이 첫번째 사진의 탑이다.
그리고 아무르 강이 잘 보이는 전망대 다음 장소로 이동.
러시아에서는 아무르 강, 중국에서는 흑룡강. 규모가 정말 컸다. 백사장도 있고.. 조금만 더 넓으면 바다라고 했겠어. 껄껄.
강 사이에 있는 넓은 평지는 여의도 같은건가? 해서 저기는 뭐하는 땅이냐고 물어보니 저기 안에 뭐 감자 농사도 하고 그런다고... 주말 농장처럼 배타고 가서 농사도 짓고 별장도 지어서 쉰다고 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오래된 성당과 현대식 건물의 대조가 현재의 러시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차 친구와 같이 다니며 만나기 전에 봤던 행사에 대해 물어보니 하바롭스크가 생긴지 160주년이라 2018년은 중요한 해라고 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곳은 1858년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총독 무라브요프 아무르스키에 의해 만들어진 군사 기지 도시라고 한다. 1651년 예로페이 하바로프가 개척해서 도시 이름이 하바롭스크인 것이고, 발전은 아무르스키가 이뤘으니 강 이름이 아무르 강이로군!
역시나 이 전망대가 있는 공원에도 아무르스키의 동상이 있었다. 그리고 이것 또한 5000루블의 앞 면에 있었다... 하바롭스크는 5000루블의 도시인가요... 키야.
하바롭스크의 영원의 불꽃, 추모 공원도 들렀다.
그리고 이 성당을 마지막으로 열정적으로 나를 가이드 해 준 기차 친구와 헤어졌는데 나중에 기념품을 못 준걸 나중에 알고나서 후회하며 땅을 치고 절규했다. 이토록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선한 러시아인에게 자그마한 감사의 표현을 하지 못했다니.. 후.. 나중에 정말 고마웠다며 메세지를 보냈다. 고마워요 블라디미르.
숙소에 와서는 기차친구가 추천한 밥집에 갔는데 반 뷔페식이었고 맛은...??? 잘 모르겠다... 그저 오랜만에 맛보는 밥알에 만족했다.
어영부영 밥을 먹고 숙소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너무나도 시원한 것을 마시고 싶고 갈증이 심해서 쇼핑센터에 갔더니만 문을 다 닫아버려서 가판에서 샀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 콜라 아진 리떼르-빠좔루스따- 하니까 주더라. 역시 사람답게 살려면 기본 러시아어는 해야하는구나.. 적어도 글자는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힘겹게 사왔더니만 시원하지가 않았어....ㅂㄷ..... 그래도 산 게 어디냐.
귀가길은 해질녘에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처음이라 넘모 살 떨려서 과부화걸린 미어캣처럼 주변을 쉴새없이 살피며 바쁜 걸음으로 다녔다.
이 날이 어느덧 4일차.
처음으로 홀로 낯선 나라에 먼 곳에 있음이 실감이 좀 나기 시작하고 앞으로의 일이 심각하게 걱정되기 시작한 날이다.
당장 이르쿠츠크도 2일이나 열차에 있어야하는데.. 어찌할까 감도 잡히지 않고 큰일이구나 싶었다.
전에는 외국에서 살고싶다고 생각했는데 다 필요없어, 말 통하고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최고야. 라고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